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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 - 누가 김성재를 죽였나

by 다오파더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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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으로써의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그 날 죽음의 미스테리

어릴 적 일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구체적인 서사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김성재 사건도 그것들 중 하나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앞으로도 누릴 수 있었던 젊은 가수의 죽음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다 펼치지 못한 재능이 너무나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잊을만하면 다시 불리는 노래들이(나는 특히 '여름 안에서'가 여름 시즌을 대표하는 곡이며 앞으로도 그럴거라 생각한다) 여전히 그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도 여러가지 음모론이 난무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성재 사건의 방송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전 여자친구의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는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고 있는 작가가 팬으로써의 진심을 담아 지난 2년동안 김성재 변사 사건과 관련한 수사기록, 공판기록, 신문 기사, 잡지 기사 등 거의 모든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최근까지 당시 수사 관계자들과 판사들을 수소문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간 기록이다. 책은 500페이지인데 처음 60페이지는 김성재와 이현도의 만남, 그리고 듀스 결성 후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빨리감기처럼 묘사된다.

전성기 그들의 모습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마지막 날 영상 속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소용돌이를 전혀 예상할 수도 없을만큼 자신만만하고 천진난만하다. 사건 당일 아침의 일부터 시작되는 70쪽부터 본격적으로 김성재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진행된다. 차분하면서 꼼꼼하게 당시 정황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혹시 우리가 놓친게 있는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데 현장의 중심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수많은 의혹만을 남긴 채 종결된 수사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된 졸레틸과 관련한 논쟁과 죽음의 시간을 둘러싼 공방들은 사건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정황 증거는 충분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으나 결정적 물증이 없는 심증만으로 살인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직접 사인인 졸레틸의 투여를 두고 그것이 마취에는 충분한 양이나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불어 플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시체 사진 속 시반의 경우도 확실한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몇 백 페이지동안 수많은 합리적 의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살인범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두고 작가는 초동수사의 부실함과 검시 시스템과 당시 과학 수사 수준의 후진성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실제로 사건 현장은 전혀 보존이 되지 않았다. 중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맥주병이나 주사기는 쓰레기로 버려져 찾을 수 없었으며 CCTV가 삭제되는 동안 사건 당일의 장면을 확보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망이 확인됐지만 직장 온도, 시반가 시강(사후 경직도)등은 곧바로 측정되지 못했고 부검은 이튿날 오전에야 진행됐다. 김성재의 죽음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고 김성재측 주장도 매우 합리적인 것은 확실하다. 어떻게 열 번이 넘게 주사바늘을 찌르는데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는가를 따져보면 본인이 했거나 혹은 피고인이 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김성재의 몸에서 발견된 졸레틸을 구매한 사람 역시 피고인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졸레틸을 구매한 의사가 진술을 번복한 것 역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졸레틸이라는 약물의 치사량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고 결국 치사량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작가의 말대로 어떤 약을 써서 사람이 죽으면 그게 결국 치사량이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아픈 기억 보다는 영광스러웠던 한 때를

그러나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써보자면 피고인측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 책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성재의 팬으로써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제는 '누가 김성재를 죽였나' 이지만 어느 정도 범인을 단정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가지 느낌을 적어보자면 첫 번째로 '진혼'이라는 제목이 붙은 9화에서는 진혼굿을 하던 무당이 'OO가 나를 죽이려고 주사기에 넣은 동물 마취제가 죽음의 원인이다' 라고 했으며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적었는데 초동수사의 부실과 그 시절 과학수사의 수준에 안타까워 하는 작가의 입장과 반대되는 성격의 서술이라 조금은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는 사건 해결의 중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중학생 팬의 진술과 그것의 번복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중학생을 증언대에 세울 만큼 당시 공판이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도로만 서술했는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느낌이다. 세 번째는 피고인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사가 고위직 전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기간이 없던 시절에 다른 방법으로 승승장구 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들이댄 증거와 그것을 근거로 하여 내린 판결을 부정하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것이 알고싶다의 방송금지와 관련한 내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떳떳하면 대중 앞에 나와 입장을 밝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판 기간 내내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변론했으며 결국 본인의 무죄를 입증한 피고인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미 끝난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사건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이들에게 또 다른 아픔이 되지 않을까.

 

초동수사의 부실함이 낳은 안타깝고 아쉬운 사건을 뒤로 하고 책의 마무리는 다시 김성재의 살아 있을 적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의 패션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으며 유행을 선도했는지, 그의 아우라는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그의 음악은 얼마나 눈부셨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는 김성재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김성재의 유작 앨범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팬들은 모이고 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흐르고 있지만 이 책이 그 시절 그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fan의 의무이자 기자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pen의 의무이기도 하다.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김성재를 기억하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현재의 과제를 돌아보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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