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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정의 중독 -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by 다오파더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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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정의에 취해 타인을 비난하며 쾌감을 얻는다?!

<정의 중독>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좋았던 기억이 났다. 대학생들의 손에는 전공과 관련 없이 교과서처럼 이 책이 들려 있었던 것 같은 조금은 과장된 느낌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우리는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정의'가 어떤 느낌인지는 안다. 사전을 찾아보면 진리에 맞는 도리, 바른 의의, 공정한 도리 등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그 반대 지점에 있다.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약속된 선을 넘는 것 같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어떠한 명사에 '중독'이 붙는 경우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작가에 의하면 <정의 중독>은 스스로의 정의에 취해 타인을 비난하며 쾌감을 얻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타인이게 '정의의 철퇴'를 가하면 뇌의 쾌락 중추가 자극을 받아 쾌락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며 이 쾌락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타인을 절대 용서하려고 들지 않는다.

처음 두 장은 인간이 정의에 중독되는 사회적, 역사적, 지리적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1.

SNS는 정의 중독자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도구다. 누구나 쉽게 의견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익명성 뒤에 숨어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례를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악플은 오랜 사회적 문제점 중 하나이지만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나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정의하고 용서할 대상을 가리는게 아니라 그저 다수의 편에 붙어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

지리적 특수성에 의해 오랜 시간동안 축척된 문화는 정의의 기준을 집단마다 다르게 만든다. 일본인인 작가는 유럽(특히 프랑스)과 일본을 예로 들며 폐쇄적인 자연환경과 수많은 자연 재해로 인해 구성원들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본인들은 집단의 규칙을 지키고, 전례를 답습하며, 순종적이고, 튀지 않게 살아온 반면 다양한 인종과 문명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유럽 대륙의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SNS를 안하거나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그럼 모두 정의에 중독되지 않은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생물학적으로 남을 공격할 때 황홀함을 느끼게 설정되어 있다. 또한 동조압력,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편견, 노화에 따른 뇌의 보수화 (ㅜㅠ 슬프다), 자기일관성의 원리 등 다양한 사유가 우리를 정의에 중독되도록 만든다. 3장은 과학적인 접근으로 정의 중독에 관해 설명한다.

3.

인간이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인간의 뇌가 그렇게 설계 되었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개체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며 특히 인간은 그 경향이 뚜렷하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가 있기 때문에 그 집단에 속하는게 아니라 집단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한 것을 곧 정의로 본다. 집단 구성원에서 정의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존속을 위협하는 무언가에서 집단을 지키는 것이며 그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

자신이 속한 집단 외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하는 인간의 성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도파민인데 정의중독에 빠지면 도파민이 분비되며 이는 곧 인간이 누군가를 공격하면 할수록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그 행위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집단 내에서 암묵적으로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다수의 생각을 따르라고 강제하는 '동조압력'이 소수가 목소리를 내는데 상당한 용기를 필요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그 외의 사람들보다 좋게 보는 내집단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이것은 악의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저건 원래 저래'라고 하면 뇌가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살펴보니 첩첩산중이다. 나의 집단을 유지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본능과 동조압력, 뇌의 움직임이 내집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비슷한 성향의 집단에서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반복하게 되면 어느새 자신은 옳고 내 생각이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점점 내이야기 같다...)

슬프게도 인간의 뇌는 나이들어가면서 보수화된다. 다른 의견과 사상은 자동적으로 기각되며 그에 따라 사고는 더욱 경직된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의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나만(혹은 내가 속해 있는 집단만) 옳고 타인(혹은 타인이 속해 있는 집단)은 무조건 틀리다는 생각을 어떻게 고쳐먹을 수 있을까? 뇌는 늙어가는데 우리가 극적으로 상황을 반절시킬 수 있을까? 4장은 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4.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라떼는 말이야!" 에서 끝나는 상사와 "(라떼는 말이야!) 그런데 요즘은 다르니 이해해 보자" 라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상사가 다른 것처럼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행위는 뇌가 노화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고 이는 정의중독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패턴은 다양한 장면에서 엿보인다. 옛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나 영상만 즐기게 되거나, 옜날 이야기 말고는 재미가 없다거나, 늘 비슷한 음식만 먹는다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보단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것 등등. 물론 그것들이 전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경향은 전두전야의 퇴보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신호다. (129쪽)

늙지 않는 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인지하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는게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를 훈련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

다른 길로 걸어서 목적지를 가본다거나, 안먹던 메뉴를 시도한다

② 불안정하고 혹독한 환경 속에 들어간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즉 지금 내가 완성한 안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 저자는 '절대 읽지 않을 책'이나 '관심 없는 책'을 골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③ 안이하게 범주를 설정하거나 낙인찍지 마라.

앞에서 뇌는 수고를 덜하기 위해 나와 다른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판단한다고 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④ 여유를 소중히 여겨라.

먹고살기 바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깐 평소에 여유를 소중히 여기고 잠도 잘자야 한다.

그밖에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며 모든 것을 대립이 아닌 병렬의 관계로 생각하는게 필요하다.

뭐 뾰족하고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얇아서 빨리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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