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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생각

가슴뛰는 그라운드의 로맨티스트 이야기

by 다오파더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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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의 로맨티스트를 보는  감동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많은 경기를 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아가 더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기도 할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우승컵 하나를 들어올리는 상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연봉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기회가 된다면 우승확률이 높은 팀으로 이적을 하고 오일머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승확률이 높은 팀이나 더 수준 높은 리그로 이적한다는 것은 그 팀이 자신의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며 수준높은 무대에서 수준높은 선수들과 경기를 통해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은 중요하기 때문에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때 만지는게 당연하다. 내가 지금 10억을 받고 있는데 50억을 준다고 하면 안가는게 이상할 정도다.

이름있는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축구선수는 이미 많은 돈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다. 선수들은 결정내려야 하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선수 본인이기 때문에 아쉽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선택을 하는 수많은 선수 중 종종 우리가 '낭만적인 선수다!', '그라운드의 로맨티스트다!' 라고 부르는 선수들이 있다. 주로 위에 언급한 선택과 정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선수들을 그렇게 부르는데 대표적으로 한 클럽에서 꾸준히 뛰고 있는 선수나 우승 확률이 높은 팀의 구애에도 자리를 지키는 선수, 엄청난 연봉을 거절하는 선수들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팀의 우승을 이끈다거나, 승격의 주역이 된다거나, 수많은 실패 속에 기어이 성공을 이뤄내는 선수들 때문에 축구의 감동이 배가 된다. 

 

마지막 경력은 나의 사랑하는 고향에서! 루카스 페레스

낭만적인 축구선수 루카스 페레즈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고향팀에서 불태우기로 결심한 선수가 있다. 현재 스페인 3부리그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는 루카스 페레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2023년 1월 스페인 1부리그 카디스에서 이적했다. 라 코루냐에서 태어난 루카스 페레스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잉글랜드, 스페인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뛰었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1990년대 부터 2000년대중반까지 존재감이 확실한 클럽으로 스페인리그 우승을 경험해 본 9개의 클럽 중 하나다. 데포르티보 하면 '리아르소의 기적'을 떠올릴 수 있는데 2004년 챔피언스 리그 8강 AC밀란과의 경기에서 1차전 4대1 패배 이후 2차전 4대0을 만들며 4강에 진출한 명승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3부리그에 머물러 있으며 올시즌 루카스 페레스의 활약을 통해 2부리그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1부리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가 고향팀을 위해 3부리그로 이적한 것도 낭만적인 스토리인데 여기에 더해 루카스 페레스는 이적료의 절반인 6억 정도를  사비로 부담했고 급여를 6배 이상 줄이는 계약에 서명했다.

 

"저는 수년 동안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있고 50만 유로가 들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이 3부리그로 가는 것이 아닌 데포르티보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디스 입장에선 중요한 시기인 1월에 선수를 내주는게 아쉽지만 이적을 허용했고 루카스 페레스는 이적 이후 22/23시즌 19경기 8골 7어시스트, 23/24시즌 리그에서만 30경기  12골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돈은 자신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꿈은 자신의 팀을 1부리그로 올려 놓는 것이다. 1988년생인 그는 아직 열정이 남아있으며 다음 시즌 2부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며 이야기를 이어나갈지 기대된다. 

 

파르마 그 자체!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파르마 그 자체 루카렐리

축구계의 로맨티스트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루카렐리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파르마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다. 파르마는 우여곡절이 많은 클럽으로 1990부터 2000년까지는 세리에A에서 늘 5위 안에 들던 강팀이었다. 문제는 2015년 구단이 파산하면서 구단명 박탈은 물론 모든 선수들이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고 아마추어리그인 세리에D로 강등되었다는 것이다. (2015년에 이미 선수와 구단 직원들의 임금이 밀려 있는 상태였고 훈련장의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겼다고 한다.) 하부리그 강등의 위험은 경쟁력 있는 선수의 이탈일 것이다. 파르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14/15시즌과 15/16시즌 선수들을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파산 이후 팀을 옮긴 선수들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름 15/16시즌 
안토니오 미란테  볼로냐
가브리엘 팔레타  AC밀란
마시모 고비 키에보
안토니오 노체리노 AC밀란
아마우리 토리노
펠리페 우디네세
안드레 코스타 엠폴리
이삭 벨포딜 바니야스
조나단 비아비아니 인터밀란
안토니오 카사노 삼프도리아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감에도 주장 루카렐리만은 떠나지 않았다. 루카렐리는 파르마에서 주전의 입지를 다진 중앙수비수로 2012년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팀이 세리에D로 강등된 이후 그는 내 심장이 시키는대로 파르마로 남는다고 했고 남은 선수들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15/16시즌 팀의 38경기 중 36경기를 소화했으며 팀은 28승 10무 득점 82 실점17 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으로 승격했다. 16/17시즌 세리에C에서는 팀의 38경기중 34경기를 주전멤버로 소화했으며 팀은 20승 10무 8패로 플레이오프 끝에 세리에B로 승격했다. 17/18시즌 루카렐리는 4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팀의 주장으로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시즌 막판 부상 여파로 4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최종전에 선발로 출전했고 팀은 2대0으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파르마는 승격했고 세리에 역사상 최초로 세리에D강등 이후 매 시즌마다 승격한 역사적인 팀이 되었다. 루카렐리가 지키고 있는 파르마의 후방은 든든했으며 17/18시즌 파르마는 세리에B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한 팀이었다. 승격이 확정된 이후 루카렐리는 영화처럼 은퇴를 선언했다. 루카렐리는 파르마의 연속 승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을 뿐 아니라 파르마 유일의 세리에D부터 A까지 뛰어본 선수이며 클럽의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진 사나이가 되었다.

루카렐리 고별사

"스페지아 전은 축구선수로서의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습니다. 저는 이 팀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파르마의 일부가 될 것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이 위대한 팀의 주장이었던 것, 그리고 이 아름다운 셔츠를 입었던 것, 내가 축구선수 알레산드로 루카렐리로서 충실히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도르트문트의 아이콘! 마르코 로이스

도르트문트에서 로이스의 마지막 경기

마르코 로이스는 어릴적 도르트문트 유스팀에서 뛰기도 했지만 왜소한 체구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9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2012년 도르트문트 이적 후 지금까지 뛰고 있다. 도르트문트는 11/12시즌 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2위만 7번을 차지했으며 12/13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아쉽게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해 준으승을 차지했다. 이렇듯 로이스는 수많은 우승의 문턱에서 여러번 주저 앉은 경험이 있는 선수다. 이렇게 보면 로이스는 그저 오랜 기간 동안 강팀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처럼 보이지만 도르트문트에서 우승을 찾아 최강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세 명의 선수들의 임팩트가 너무 크기에 단순히 잘 하는 선수 이상의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먼저 13/14시즌 마리오 괴체가 바이아웃으로 뮌헨으로 이적했다. 마리오 괴체가 누구인가? 8살 때부터 도르트문트 유스팀에서 뛰며 로이스와 함께 팀의 미래로 불리던 선수다. 그런 선수가 리그 내 라이벌팀인 뮌헨으로 이적하는데 좋아하는 팬들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14/15시즌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이적이다. 그리고 16/17시즌 훔멜스가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도르트문트의 핵심 멤버들이 거의 매년 최전성기에 다른리그도 아닌 같은리그 우승경쟁팀으로 이적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들 선수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물론 괴체는 20년 다시 도르트문트로 복귀했다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PSV로 이적했고 훔멜스는 19년 복귀 이후 요근래 최상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로이스는 묵묵히 도르트문트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로이스에게는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는데 리그 우승이 없다는 것 외에도 전성기에 월드컵에서 활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부상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그렇게 활약해놓고 정작 큰 부상으로 본선에는 아예 불참했다. 유로2016 역시 예선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했으나...대해 직전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드디어 경기에 나섰지만 팀은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유로2020에서는 본인의 의지로 불참했는데 여러모로 메이저 국가대항전과는 연이 없는 불운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로이스는 올시즌을 마지막으로 도르트문트를 떠나겠다고 한 상태다. 마지막 홈경기에서 팬들은 로이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팻말을 들어올렸고 로이스는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활약했다. 또한 경기장을 찾은 8만여명의 팬에게 모두 맥주를 한 잔씩 대접했다.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별의 맥주는 제가 삽니다. 여러분의 마르코)

로이스의 맥주선물

운명적이게도 로이스의 도르트문트 마지막 경기는 레알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될 전망이다. 도르트문트에서 로이스에게는 이제 90분의 시간이 남았다. 로이스의 활약으로 도르트문트가 우승한다면 입단 첫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좌절했던 어린 선수가 팀을 떠나기 전 팬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우승컵을 선물한다는 영화같은 이야기가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사실 도르트문트가 이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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