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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공감의 반경 -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by 다오파더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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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반경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가?

공감의 정의와 종류 그리고 연구와 실험으로 밝혀진 사례들을 풀어내면서 공감의 개념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표지는 무슨 학술 서적처럼 생겼고 부제는 어려운 사회과학서적이 떠오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술술 읽힌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감정이입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고 우리가 흔히 공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정서적 공감'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2부는 역지사지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인지적 공감'에 대해서 다루고고 있다. 작가는 정서적 공감이 많은 느낌의 공동체에서 나아가 다름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넓이라고 말한다. 공감은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라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집단에 공감을 다 써버리면 다른 집단에 쓸 공감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공감을 어디까지 어디까지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인류는 공감의 대상을 점점 넓히며 진보해 왔으며 앞으로는 외집단을 고려하는 넓고 이성적인 공감의 원심력을 키우는게 중요하다. 3부는 우리가 사고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방법을 논의한다. 정서적 공감이 오랜 기간동안 인류라는 종의 생존과 관련한 방향으로 진화했다면 인지적 공감은 새로 배울 수도 있고 단련시킬 수도 있기에 이것을 확장시키는 것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강력한 정서적 공감의 양면성

인간은 보는 것을 느낀다.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강력한 슈팅을 영 좋지 않은 곳에 맞고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을 볼 때 내 몸도 아픈 것 같음을 느낀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하는 것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깊이 연동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남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실제로 그 행동을 할 때 내 뇌속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남이 하는 어떤 행동을 내가 보기만 해도 내가 그 행동을 할 때 내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일하게 경험하도록 태어났고 이로인한 사회적인 네트워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로 진화했다. 이러한 가정이입, 정서적 공감은 쉽게 발생하고 전염되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휘발되며 힘이 미치는 반경이 넓지 못하다. 작가는 이러한 성향을 부족본능이라고 부르는데 비교적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았던 인류의 조상에게는 생존에 유리한 성향이었을지는 몰라도 전세계가 연결된 오늘날에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부족본능과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 과잉은 인류를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게 하여 끊임 없는 갈등을 발생시켰다. 최신의 연구에 의하면 사랑호르몬 또는 공감호르몬이라고 부리는 옥시토신은 우리가 내집단을 더 선호하고 더 깊이 공감할 때 에만 한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밝혀졌다. 물론 호르몬으로 인간의 복잡함의 전부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공감이 배척 또는 차별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집단 편애와 외집단을 폄훼하는 집단간 갈등의 적나라한 경험을 우리는 코로나19 시기에 경험한 적 있다. 거대한 전염병 속에서 인간은 혐오나 경멸 같은 부정적 정서가 빠르게 전염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사회적'이라는 용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 때문에 사람들의 친밀함의 거리가 줄어들지는 않았는지 우려한다. 차라리 '물리적 거리두기' 또는 '공간적 거리두기'라고 했다면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 유지하라는 단순한 뜻으로 사람들이 이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캠페인의 효현 중 어떤 것이 더 적확한지를 논의하기 위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포와 혐오의 집단적 전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화된 공감력에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인지적 공감력은 전형적인 '사회적 거리 좁히기'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중략)...우리 인간은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사회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72쪽)

 

정서적 공감의 편향성으로 인한 양극화의 위험

알고리듬에 의한 검색과 추천은 지난 몇 년간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우리가 SNS의 좋아요를 300번 이상 눌렀다면 알고리듬은 우리보다 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추천시스템의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내가 기존에 선호했던 콘텐츠와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 두 번째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용하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협력 필터링 방식이다. 이 둘을 합친 하이브리드 필터링 방식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추천 시스템은 나의 과거 행동과 성향을 넘어서는 추천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기반한 추천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추천인 셈이다. 절대 내 경계를 넘어서는 추천은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추천에 영향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 동조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특정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실제적이거나 가상적 압력을 받아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을 바꾸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다른 집단에서 배척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다수의 견해가 자신의 견해보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진화해 왔다.  동조에 의한 판단은 새로운 정보와 의견을 듣기 힘든 폐쇄된 네트워크 속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즉 성향이 유사성으로 인한 공감은 편향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결국 이 추천 시스템은 개인의 성장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오히려 편향된 공감을 더 공고히 할 뿐이다. 깊어지는 편향된 공감은 타자에 대한 공감의 반경을 점점 줄어들게 만든다. 양극화의 위험은 더 커졌고 비판적 중도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외집단 혐오를 정당화 할 수도 있는 도덕적 직관 

외집단에 대한 폄훼는 대개 그들에 대한 역겨움이나 혐오 감정을 동반한다. 인간의 도덕 본능에는 공감의 반경을 축소하려는 구심력과 넓히려는 원심력이 모두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감정이 촉발하는 도덕적 직관은 부족 본능의 발현으로 공감의 강력한 구심력이다. 도덕 기반 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다섯가지의 도덕 기준이 있으며 이 기반이 흔들릴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역겨움이나 혐오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역겨움은 독성이 있는 무언가를 피하게끔 하는 생리적 반응인데 어떻게 도덕적 판단으로까지 확장이 되었을까? 부족집단의 더 많은 규범 준수를 위해 역겨움 감정을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인류는 수많은 규범으로 촘촘하게 짜인 집단 생활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존의 역겨움 감정을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청국장을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가 청국장 냄새를 맡고 역겨운 감정을 느꼈다면 우리는 그가 문화적으로 이방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부족본능이 글로벌 시대에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우리의  도덕적 직관이 여전히 유효하게 많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도덕적 역겨움은 보편적 감정이긴 하지만 역겨움에 기반하여 도덕 원리나 규범을 운용할 수 있는 사회는 규모가 아주 작은 부족 사회 정도다. 왜냐하면 우리가 도덕적 역겨움을 느끼는 기준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복잡함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어떠한 복잡한 인과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리는지 잘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거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책에서는 직장에 출근해서 중동으로 미사일 한 방을 날려 마을을 몰살시키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퇴근하여 아내와 아이들과 저녁을 보내는 남자를 예로 들었다) 인간은 도덕적 판단을 함에 있어서 감정과 이성을 함께 작용시키지만 감정적 판단이 먼저고 이성은 감정적 판단을 합리화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은 잠깐 제쳐놓고 이성적 논의를 통해 더 올바른 판단을 찾는 것이다.

 

인지적 공감의 중요성

오늘날 고정관념과 고정관념이 유도하는 차별적 행동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유능하다고 지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외집단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유능하다는 지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사회적으로 비주류인 집단에 속한 구성원이라면 따뜻하면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타자의 입장에서 타자와 함께 느끼고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공감이라고 한다면, 타인과 외집단을 향한 공감으로 나아가려면 우선적으로 그/그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호주제 폐지를 주요한 사례로 다루면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벌인 수백번의 토론회와 간담회가 결국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켰으며 역사, 법률과 제도, 사회문화적 연구를 통한 체계적인 논리가 결국 인지적 공감을 발현시켜 호주제 폐지라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집단 생활을 영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오직 인간만이 타인의 마음 상태를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우리 행동을 바꾸는 근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 

 

처벌은 어떻게 공감이 되는가

이앞에서 언급한 인지적 공감의 강화, 즉 공감의 원심력을 강화하려면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따르는 인지 부하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방법은 이타적 보상과 이타적 처벌이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예시를 들고 있다.

 

규범과 법, 이타적 처벌자가 나서는 응징은 타자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낸다...(중략)...가령 자신도 흡연자이기 때문에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타자의 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내집단 편애의 한 사례이다. 반면에 자신이 아무리 골초라 하더라도 타자의 비흡연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금연 구역의 이기주의자들을 기꺼이 응징한다면 그/그녀는 지금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 금연 규정뿐이겠는가? 이렇게 법과 규범을 따르고 지키려는 마음은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원심력으로 작용한다.(170쪽)

 

마음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고 본능도 변한다

앞에서는 계속 인간에 대한 공감에 대해 다뤘는데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 공감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류 공동체와 유사해 보이는 동물 집단일수록 더 쉽게 공감한다. 이는 동물에 대한 공감이 아직 정서적 공감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동물이 고통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관련하여 법도 생기는 것을 보면 충분히 정서적 공감을 넘어 인지적 공감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기계에 대한 공감이다. 보스톤 다이나믹스의 로봇 홍보 영상들을 생각하면 느낌이 올 것이다. 영상 중에는 로봇이 넘어지거나 인간이 일부러 로봇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영상에는 사람들의 불편한 감정들이 담긴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왜 기계는 동물처럼 인식되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움직이는 것은 동물이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동물들의 움직임은 두가지였다. 인간이 동물에 잡아먹히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그렇게 진화한 인간의 뇌에는 '움직이는 모든 건 의도를 가지고 있음' 이라는 명제가 박혀 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 중 쇠로 만들어진 것은 동물이 아니고 기계임' 이라는 명령은 우리의 오래된 뇌 속에 없다. 기계문명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동물에게 의인화를 하듯이 기계에게도 의읜화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고통을 느낀다고 착각하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공감력은 개인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은 공감의 반경을 인공물에도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를 생존케 한 진화의 요소로서의 감정적 공감은 인간의 본능으로 자리잡았으며 고정되어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본능은 변할 수 있으며 변하고 있다. 공감력도 마찬가지도 공감력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씨앗이지만 이 씨앗에 어떠한 자극과 경험을 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현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실험에서 역지사지는 개입과 교육, 체험이나 훈련등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작가는 인류가 동세대와의 공존과 다음 세대와의 지속을 위한 최대 변수가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라면 수학과 과학만이 아닌 공감을 가르치는 새로운 교육을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독서는 공감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왜 굳이 독서여야 하는가? 유튜브나 티비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몰입을 한다고 해서 다 같은 몰입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튜브나 티비를 볼 때 우리 뇌는 주로 시각 피질만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뇌 전체가 활성화되고 활용된다. 이런 과정에서 타인의 생각, 감정, 지식 등을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작가는 공감의 반경을 확대하기 위해 전 인류가 동참해야 할 방법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편견과 갈등을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외집단 사람들과의 접촉과 교류가 해법이다. 하지만 무작정 접촉한다고 해서 외집단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집단 간 접촉을 통해 공감의 반경을 넓히려면 첫 째, 두 집단이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고 둘째, 서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친밀하고 다양한 접촉이 있어야 하며 셋째, 상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단 간 협력이 유발되는 접촉이어야 하고 넷째, 관습, 규제, 법이 허용한 접촉이어야 한다. 

 

다정한 인류가 가지고 있는 배려심이야 말로 공감의 반경을 확대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세상이 흉흉하고 갈등에 대한 기사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훈훈한 이야기들을 접했을 때 뭔지 모를 뭉클함을 느끼는데 이 감정은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거라 확신한다. 작가도 인간의 이러한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려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중략)...다른 동물들의 협력은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인 반면에 인간의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협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대개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경쟁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만연해 있는 인류에 관한 가짜 뉴스라고 생각한다.(265쪽)

 

이 책으로 인해  '공감은 좋은거 아니야? 공감 많이 해주면 좋은거 아니야?' 라는 질문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공감과 의식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공감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생활에 있어서도 공감이라는 두 글자 뒤에 숨은 이기심과 편견, 혐오의 감정은 무엇일까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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