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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진상을 말씀드립니다

by 다오파더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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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계의 초신성 '유키 신이치로'의 단편 작품집

일본 미스터리계의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화제의 젊은 작가 '유키 신이치로'의 단편 작품집으로 2023년 일본서점대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특히 마지막 단편인 '#퍼뜨려주세요'는 제7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부분)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모두 다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짧은 호흡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참자면담'은 이 책의 나머지 네 개의 추리게임에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튜토리얼 역할을 한다. 독자에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상황과 공간에 대한 묘사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는데, 실제로 다섯편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구성이나 분위기가 매우 비슷한 느낌이라 각 이야기마다 새로운 퀘스트를 부여받는 느낌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의 추리게임

다섯편의 이야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데 시작은 아주 평범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롤러코스터가 편안하게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할 때 당장은 편안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긴장되고 걱정이 되는 느낌. 절정 부분에 이르면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무지막지한 속도로 전개된다. 반전들도 단순히 'A가 사실은 B였어' 라는 느낌을 넘어선 느낌인데 360도 뒤집힌다라는 표현이 진부할 정도로 참신한 편이다. 모든 추리 소설에는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책은 특히 그 반전의 시간이 인상적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이야기가 진행될 때 위화감을 느꼈던 대사나 행동 주변 환경 묘사가 전부 억지스럽지 않게 해답의 근거가 된다. 옮긴이의 말처럼 '많은 복선이 깔끔하게 회수되며, 논리적인 의문을 남기지 않아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이해'된다. 실제로 작가는 작품을 집필할 때 두 가지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중 하나가 '독자에게 공정(Fair)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즉 내가 읽고 듣는것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정함이 독자에게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퍼즐을 전부 완성시킨 것 같은 쾌감을 전한다.

두 번째는 이 소설은 단순히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정한 추리게임 그 자체에만 신경쓰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작가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추리소설로의 쾌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잔뜩 상기된 상태로 다시 롤러코스터의 출발선에 서게된다. 김전일을 예로 들어보면 독자가 가장 쾌감을 느끼는 부분은 일단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등장인물들을 모두 넓은 공간에 모이게한 다음 사건을 푸는 장면일 것이다. 김전일이 사건을 다 풀어갈때쯤 해서 강력한 용의자로 지명된 한사람은 무릎을 꿇고서는  '그래 모든 것은 그것 때문이었지 휴..' 라며 자기가 사건을 일으킨 배경과 심리상태의 변화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만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사건 이후의 일상까지 묘사하며 비로소 마무리된다. 이 책은 그런게 없다. 사연이 없다. 일단 사건 현장에 던져놓고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보여주고 몇 분간의 시간을 준 다음(실제로 시간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초시계가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해답을 알려주고 끝나는 식이다. 실제로 모든 이야기가 좋게 말해서 열린결말로 마무리된다.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심리상태에 더 흥미를 느끼는 쪽이라면 이러한 부분은 굉장히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다.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주제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데이팅앱의 익명성, 유튜브의 윤리, SNS를 통한 정자 제공, 온라인 회식)이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에 이러한 스타일로 쓰는게 목적이었겠지만 각 단편들 속에서 보여지는 이야기 재료들은  매력적이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인 '#퍼뜨려주세요'는 다섯 작품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순위를 뽑아보자면 #퍼뜨려주세요 > 참자면담 > 매칭어플 > 삼각간계 > 판도라 순이다) 트루먼 쇼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트루먼 쇼가 짜여진 각본인 '안'에서 처음 만나는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퍼뜨려주세요'는 여기에 더해 유튜브라는 매체가 구독자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콘텐츠의 도를 넘는 선정성을 다루고 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납득이 되는 작은섬의 네 꼬마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장편으로 풀어내도 충분히 설득력 있고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보니 뭔가 칭찬만 한 것 같은데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묘하게 엉덩이 탐정이 생각났다. 엉덩이 탐정을 보다보면 갑자기 어떤 정지 화면과 함께 '자! 여기서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요?' 라는 식의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지는 부분이 있다. 초침은 다 돌아갈 때까지 시청자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었다. 어떠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느낌보다 어떠한 정지된 장면들에서 단서만 찾고 그것들을 퍼즐처럼 조합시켜 완성하는 것. 그리고 그게 전부인 것. 그렇지만 매 번 이런 반전을 선사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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