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생각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by 다오파더 2024. 4. 18.
반응형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과학과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 흥미로운 SF소설

현재 절찬리 상영중인 손석구 주연의 영화 '댓글부대'의 원작자 장강명의 소설이다. 책 소개에 보면 근미래의 기술과 어둠을 그린 흥미진진한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STS란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로 과학기술학이라고도 하는데 과학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책에는 총 7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까운 미래 과학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하지만 흥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떤 SF소설들은 작가가 상상한 어떠한 세계관이나 기술을 자랑하는 데 지면을 할애한다거나, 굳이 SF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디테일하게 파고든다. 이 이야기가 현실과 붙어 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옵터라는 기계를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상이 배경이다. 예를들어 상대방이 나에게 "나가 죽어." 라고 말해도 나에겐 "네, 조심히 가세요." 라고 들린다거나 옵터를 장착했을 때 매력적인 외모로 보이는 사람이 사실 실제 나이보다 몇 배는 더 먹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돈을 모아 크루즈를 빌려타고  하루종일 옵터만 착용한 채 가상의 세계에서만 산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실재하지 않는 상상을 믿게 되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현실이 된다. 우리는 옵터를 통해 각자 바람직한 세상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문제냐? 모든 객관적 사실들이 개인에게 똑같은 수준으로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옵터가 외부의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다만 배에 남겨진 마지막 한 명의 아동을 육지로 이동시킬 뿐이다. 아이를 배에 탄 가족과 분리시키는 명분은 미성년자를 아무런 보호 없이 증강현실 속에서만 살게 하면 안된다는 아동보호법이다. 배에 탄 어른은 내가 보는 것이 진짜라고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 어른의 말이 맞긴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재 속에서의 경험과 판단이라는 것으로 읽힌다. 열두페이지 분량으로 소설의 오프닝을 맡기에 인상적인 이야기이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

금성에 있는 어머니와 지구에 있는 딸이 꾸미는 어떠한 계획과 관련한 이야기다. 인상깊었던 소재는 우주탐사를 위해 우주선을 적극적으로 쏘아 올리는 곳이 유명한 탄산음료 회사이며 효율을 위해 인간의 몸은 지구에 둔 채 머리만 보낸 다는 것이다. 탄산음료회사는 우주로 보내진 과학자들의 모습을 중계하며 광고비를 취한다. 우주 연구에 진심인 과학자들도 결국 음료 회사의 직원일 뿐이며 중계되는 그들의 일상은 보관된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조작되어 시청자들에게 더욱 드라마틱하게 비춰진다. 가까운 미래에 우주산업과는 관련이 없는 초거대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우주여행을 안정적이게 성공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지막지하게 본업을 확장해 나간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책에서는 어머니와 딸이 공간과 거리의 제약을 이겨내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을 중점적으로 표현하지만 크게 극적이라거나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러한 묘사들이 내 취향은 아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7개의 이야기 중 독보적으로 흥미로웠다. 제목은 한나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따왔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있으면 굉장히 도움이 된다. 아이히만에 대해서 나는 딱 이정도까지만 알고 있었다. 나치 전범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주요 인물 중 한명인 아돌프 아이히만,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첩보조직에 의해 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고 이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 라는 사람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더 깊이 들어가보자면 한나 아렌트가 만난 아이히만은 굉장히 유대인을 증오한다거나, 어떠한 사상에 심취 혹은 세뇌가 당한 것 처럼 보인다거나, 생각 자체가 폭력적이거나 사악하지 않고 매우 평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자신은 명령받은대로만 행동했기에 잘못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어렸을적 이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 한길사에서 출판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샀는데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다...) 재미와는 별개로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할지 완벽하게 정리한게 아니라, 쓰는 내내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다음 장면 또는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덩지면서 글을 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속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라는 식.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에는 타인의 정서적인 기억, 기분을 완벽하게 체험할 수 있는 '체험 기계'라는 것이 등장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잡은 아이히만에게 체험기계를 이용해 유대인들이 겪었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주고자 한다. 내가 겪은 고통을 너도 똑같이 겪어보라는 의미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던져진다. 나중에 체험 기계가 보급된다면 복수의 도구로 그걸 쓰고 싶은가? 상대를 교도소에 보내고 싶은가 아니면  체험 기계 속에서 내가 겪은 고통과 슬픔을 겪게 하고 싶은가?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이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모른채로 사형이라는 처벌을 당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체험 기계로 가르침을 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아이히만에게 아우슈비츠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공하는 이는 벤야민이라는 인물로 아이히만은 벤야민의 육체적 고통이나 굶주림이 아니라 상처와 상실감 등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여기서 아이히만은 제안을 하나 한다. 다른 누군가도 아돌프 아이히만을 경험하라는 것. 자신은 그저 부품의 하나였기 대문에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아이히만의 기억은 벤야민이 체험하게 된다. 

체험을 마친 아이히만은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반대편의 벤야민 역시 넋나간 사람이 되어 나온다. 체험기계 앞에 모인 기자들은 벤야민이 '내가 겪은 아이히만의 악함이 이러이러합니다! 이 놈은 나쁜놈입니다!' 라고 외치는 것을 기대했는데 벤야민은 사죄하는 아이히만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후에도 소설적인 상상력이 탁월하게 펼쳐지며 몇 번의 반전을 선보이는데 대체 역사물이 주는 흥미와 함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상대의 기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처벌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무조건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논의들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더 긴 이야기였다고 하면 충분히 여러 질문들에 대한 논쟁들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고 영상화를 하더라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작품같다. 

 

<나무가 됩시다>

인간의 몸에 엽록체 유전자를 심는 수술을 받는 사람의 경험담이다. 수술은 아팠는지? 피부가 녹색이 되는지? 에너지를 덜 쓰게 되는지? 등이다. 나뭇잎 인간이 되어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라면 극단적 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읽혔다.

 

<사이보그의 글쓰기>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 글쓰기에  즐겁게 몰입하게 도와주는 헤어밴드의 사용 후기다. 헤어밴드를 착용하면 문장은 엄청 폭발적으로 쓸 수 있는데 문장보다 더 큰단위를 구상하는 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작가는 결국 헤어밴드의 착용 효과가 술에 살짝 취해 별 대단치 않은 수다를 길게 늘어놓는 정도라고 결론 내린다. 글을 잘쓰고 싶어하는 고뇌와 함께 개인적인 바람이 들어간 고백이다.

 

<아스타틴>

이 이야기는 다른 6개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이질적이다. 앞에서 소개한 STS라는 이 소설의 장르에 속한다기 보다는 정신과 육체가 신의 영역에 다다른 몇몇 초인들의 액션 활극을 보는 느낌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장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였다. 작가가 '나도 이렇게 액션이 가미된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어필하는 부분인 것 같다. 

 

<데이터 시대의 사랑>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느낌의 이야기다. 아마 현재 우리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 '취향 기반의 추천 서비스'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하는 것은 음식이나 영화, 책이 아닌 평생의 반려자다. 남자와 여자는 아주 '우연하게'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문제는  예측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결혼생활의 지속 기간은 5년 이라는 것. 놀랍게도 왜 5년 밖에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지에 대한 상세한 이유까지 다 파악되는 시대다. 여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예측일 뿐이라고. 결국 선택을 하는 것은 본인이고 데이터가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데이터의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서는 모든 물건에 CPU와 센서가 탑재된다.(심지어 콘택트 렌즈에도 탑재되어 있어 어떤 걸 볼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기록된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분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사회의 젊은 친구들은 여자가 남자를 극장에서 '우연하게' 만났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며 반문한다. "아니 상대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사귀었단 말인가요?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요?" 

결국 둘은 예측대로 갈라서게 된다. 예측 불허의 인간이 되겠다는 마음에 여러가지 충동적 행동들도 해보지만 그 역시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는 것들이다. 둘이 갈라서자 마자 치유 명상센터, 1인 여행상품, 결혼 정보 회사,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에 관한 광고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기업들은 주인공들이 무심코 눌렀던 동의 버튼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그들이 가라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스포가 되기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박한 근거 또는 아예 근거가 없음에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들이 분명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다.

 

삶의 불확실성이 곧 인간의 본질

마지막에는 작가의 말이 쓰여져 있는데 이 소설집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커진 시대에 "기술은 사람이 쓰기 나름"이라는 말만큼 위험한 기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어가면 주방 도구가 되고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흉기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칼이니까 그런거고, 총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실탄이 든 권총이 쓰는 사람에 따라 요리나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물건인가? ....나는 오히려 오늘날 시장에 나오는 신기술 대부분에는 개발 주체의 아주 분명한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본다. '돈을 벌고 싶다' 혹은 '힘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에는 돈이 든다. 기업이건 국가건 그 비용을 대는 사람들은 들은 돈 이상으로 수익이나 군사력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기술 개발을 후원한다. 초지능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그걸 과연 이타적으로 사용할까?....나는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고 결단을 내리는 행위가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데, 데이터 예측 분석 기술은 여기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우리가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개발하거나 사용하지 말자고, 혹은 사용을 제한하자고 합의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프레온가스와 DDT, 유연휘발유, 원자력 같은 사례들이 있다. 

 

어떠한 기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끝이 어디일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기술이 인류에게 어떤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멀리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없다. 기술과의 거리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며 똑같은 거리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가치판단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을 통해서 발전된 기술이 보편화된 일상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판단의 근거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읽은 책을 더 잘 기억하고 싶다면 아래의 글도 읽어보길 바란다.

 

읽은 것의 80%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7가지 전략

medium.com의 기사 중 '읽은 것의 80%를 기억할 수 있는 7가지 전략'을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다.  7 Strategies To Help You Remember 80% of Everything You ReadHonestly, each strategy by itself will help you remember at least 60% of

daofather.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