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생각

요리코를 위해

by 다오파더 2023. 1. 30.
반응형

전통적인 느낌의 추리소설 <요리코를 위해>

소년탐정 김전일 때문인지 어렸을 적부터 일본 추리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주인공과 내가 쉴새없이 마지막을 향해 달리면서 얽혀있는 복선을 함께 풀어나가는 재미는 물론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묘사된 트릭의 비밀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추리물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 비슷비슷하게 보여도 읽을 때마다 재밌다. 일본 추리물에서는 대체적으로 사건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해결된 다음에는 등장인물들의 말못할 사연들이 등장한다. 잔혹한 사건과 대비되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한편 반전이 있는 내용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요리코를 위해> 역시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동시에 올드하고 정직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주인공과 독자가 같은 시점으로 범인찾기 게임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초반부터 질주하는 스피드와 흡입력

요리코가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초반부터 폭발적인 스피드와 흡입력을 가지고 나아간다. 요리코의 아버지 니시무라는 딸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생각하여 스스로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달리고 결국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단죄한다. 그리고 딸의 죽음부터 딸을 죽인 범인의 죽음까지의 순간들을 모두 기록하여 아내에게 남기고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명망 있는 사립학교 학생의 죽음에 매스컴이 들썩이고 이 사건에 이상함을 느낀 노리즈키 린타로는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같은 단서를 가지고 함께하는 추리게임의 짜릿한 매력

딸의 억욱한 죽음을 스스로 해결한 아버지 이야기에 어떠한 석연찮음이 있는 걸까? 대체 니시무라가 남긴 수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걸까? 노리즈키 린타로는 독자와 함께 사건의 비밀을 함께 풀어나가자고 한다. 단서는 니시무라가 남긴 수기와 소설속에 묘사된 사람들의 대사 등이다. 소설 속 탐정은 수기를 냉철하게 분석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니시무라의 수기를 읽을 때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의아한 부분을 짚어내지 못했다. 아마 이러한 부분은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써 독자에게 범인찾기 게임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사건을 풀지 못했지만 대신 소설 속 노리즈키 린타로의 추리를 함께 들으며 쾌감을 느꼈다. 이런게 앞에서 언급한 추리물의 짜릿한 매력이다. 

 

이 충격적인 결말이 요리코를 위한 것일까?

작가이자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여러번의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충격적 결말로 독자를 안내하기에 이른다. 스릴러나 추리소설의 홍보 문구 거의 대부분은 '결말의 충격'에 대한 부분인데 <요리코를 위해>는 유독 마지막 부분에 대해 넘치는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느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 어떠한 선을 넘었다고 느껴졌고 그렇기 때문에 반전의 쾌감보다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여운을 남기는 찝찝함도 아니고 토악질이 나지만 소설의 배경과 분위기의 매력에 이상하게 빠져드는 그러한 느낌도 아니다. 작가가 젊은 나이에 자신의 추리소설을 뽐내기 위해 너무나도 기능적으로 요리코를 이용했다는 그러한 불쾌한 감정이다. 이러한 불쾌감 역시 '결말의 충격'으로 사람들이 열광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공감하지 못하겠다. 중간에 니시무라(요리코의 아버지)의 수기를 분석하며 노리즈키 린타로는 '요컨대 결론이 먼저 존재하고 그에 걸맞은 조건을 반대로 도출한 셈이지'라고 말하는데 이 책에 쓰인 이야기 자체가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바로 앞에서 작가가 충격적인 결말을 뽐내고 자랑하고 싶어한다고 했는데 '뽐내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소설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록밴드들에서도 느껴졌다. 글램록 그룹 티렉스의 리드싱어 마크 볼란처럼 모자를 쓴 스타일이라는 등, 어느 곡을 연주하든 블루하츠나 스카이 워커스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났다는 등. 윈드햄 힐의 곡이 대화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음량으로 흘렀다는 등 뭔가 주석으로 설명해도 음악을 잘 모르거나 듣지 않으면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소설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묘사된다. 탐정이 아닌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가 20대에 빠져 있었던 것들에 대한 애정 혹은 과시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이 책을 20대에 썼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반응형

'책과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드시 다가올 미래: 한눈에 이해하는 기후 변화 이야기  (0) 2023.08.26
보이지 않는 중국  (0) 2023.02.26
생물은 왜 죽는가  (0) 2023.01.03
언바운드  (0) 2022.12.21
올 댓 카피 - 카피 쓰기의 모든 것  (1) 2022.10.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