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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생물은 왜 죽는가

by 다오파더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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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왜 죽는가

죽음의 원인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 여정

 

사생관이 확 바뀌는 현대인을 위한 생물학 입문이라는 문구를 보고 읽어보았다. 생각해보면 모든 생물은 죽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라 '왜'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가져보지는 않은 것 같다. 원피스에서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인간은 죽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사고로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노화로 죽는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 책은 살아있는 것들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생물학적으로 차근차근 밝힘과 동시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생물은 왜 태어나고 왜 멸종하는가?

 

1장과 2장은 도대체 생물은 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탄생했으며 왜 멸종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RNA와 DNA의 차이점, 리보솜,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의 변화 등 두어번 읽어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생물수업이 펼쳐진다. 왜 하필 지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는지에 대해 누구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에 적합했고, 처음으로 생성된 RNA라는 물질이 자신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자기 편집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자기복제가 가능하니 분해와 재합성을 반복하며 다양한 분자 종류가 생겼고 이들 중에서 강한것이 증가하고 나머지는 분해되어 재료로 사용되는 현상이 오랫동안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구 표면에 축척되어 있는 단백질에 달라붙게 되었고 시간을 거듭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자기복제하는 첫 세포의 원형이 되었다. 이게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낮은 확률의 우연과 기적이 여러번 겹치며 벌어진 일이다.

 

생명이 지구에 탄생할 확률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25미터 수영장에서 완전히 분해한 손목시계의 부품들을 가라앉힌 뒤 빙글빙글 휘저었는데 자연스럽게 손목시계가 조립될 뿐만 아니라 작동할 확률과 같다" (47쪽)

 

게다가 지구상에는 이러한 기적의 생명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것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태어나고 변하고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며 지구를 싱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를 턴오버(다시 태어남)라고 부르는데 이는 새로 태어나는 일 뿐 아니라 아름답게 지는 것(=죽음)도 포함한다. 

 

생물의 변화와 멸종(죽음)은 다양한 생물들이 생겨나게 된 이유다. 죽은 것은 분해되고 새로운 생물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 생물은 두 가지 메이저 체인지(1. 원핵세포 간의 공생에 따른 진행세포의 탄생 / 2. 다세포생물의 출현) 이후 더욱 다양해졌는데 진화 중간 단계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살아남은 것들도 함께 공존하게 되었다. 환경에 의해 멸종이냐 생존이냐가 정해지던 '양적'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질적' 단계로 변한 것이다. 즉 생물이 지금처럼 진화하면서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 생물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1장과 2장을 잘 넘기면 3장부터는 흥미롭다. 생물은 두 가지 방식으로 죽는데 '사고'에 의한 죽음과 '수명'에 의한 죽음이다. 일반적으로 대형 동물은 수명사가 더 많고 작아지면 질수록 사고사, 그 중에서도 잡아먹혀 죽는 경우가 제일 많다. 그래서 소형생물은 잡아먹히기 어려운 형태로 변하거나 자식을 많이 낳게 되었는데 이렇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각 개체들의 노력 역시 진화를 불러왔다. 그렇다면 '수명'에 의한 죽음은 어떤가? 작가에 의하면 수명이라는 죽음의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한다. 노화의 최종적인 결과로서 수명이라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 장에서는 세균의 죽음에서부터 대형동물까지 어떻게 하면 죽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몇 가지 흥미로게 읽었던 부분들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세균 얘네들은 노화에 의한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영양이 계속 공급되는 한 영원히 살 수 있다. 세균이 죽는 경우는 밥을 못먹거나, 잡어먹히거나, 사고로 죽을 뿐이다. 곤충의 경우 성충의 수명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된다고 한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많은 곤충들은 교미 후에 힘을 잃고 죽어간다. 가장 극단적으로 진화한 프로그램된 죽음이라도 말할 수 있겠다. 작은 생쥐는 잡아먹혀 죽는 유형이다. 이들은 잡아먹히기 않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번식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능력을 얻으면서 장수와 관련한 기능들이 필요 없게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죽음의 유형이 다른 인간의 노화를 연구하기 위해 쥐를 가지고 실험하는것은 좋지 않은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한다. 특이하게 쥐 중에서도 벌거숭이두더지쥐라는 종은 일반 생쥐 수명의 10배인 30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장수 이유로 깊은 굴을 파고 100마리 정도가 집단생활하는 환경을 꼽는데 천적이 뱀 정도 말고는 없고, 희박한 산소에 적응했기 대문에 체질이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뀌었고, 곤충에게서나 볼 수 있는 분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업의 효율화가 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떤 생물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죽음의 방식이야말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 살아남은 생물들에게는 '그 죽음의 방식'마저도 어떤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48쪽)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죽는가?

 

그럼 인간은 앞서 언급한 수명과 노화라는 특징을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 일단 인간의 수명은 사회환경과 관계가 깊다. 의료기술의 발달, 안정된 의식주의 확보 등 백년 전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도 85세 정도가 되면 생리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인간은 곤충처럼 프로그래밍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노화라는 과정을 거쳐 죽게 된다. 노화는 세포의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어 더 이상 분열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 세포 기능의 저하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리거나 기능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2019년 조사한 일본인 사망 1순위는 세포의 기능저하로 인한 암, 2위는 혈관 노화에 의한 심질환, 3위는 노환(우리가 말하는 그냥 그 노환), 4위는 혈관 노화에 의한 뇌혈관 질환인데 결국 인간의 죽음은 노화가 그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화는 왜 생기는 걸까? 인간의 세포는 대략 세 종류로 나뉘는데 인체 조직이나 기관을 구성하는 체세포, 세포 수가 줄어서 조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없어진 세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줄기세포, 그리고 생식계열의 세포다. 특히 줄기세포가 노화하면 새로운 세포를 공급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이처럼 줄기세포의 노화가 생물의 노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그래서 줄기세포 화장품이라는게 있는 것이군!) 그리고 노화된 세포는 독을 뿜는다. 제거되지 못한 노화한 세포는 조직에 머물며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뿌린다. 원래 이 사이토카인이라는 것은 면역 기구를 활성화 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노화된 세포에서 방출되는 경우 염증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고 이는 장기기능의 저하로 이어져 당뇨나 동맥경화, 암 등의 원인이 된다. 즉 세포의 기능 저하가 인간을 늙음의 상태로 만들게 된다.

 

죽음도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이라고 하는데 노화도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일반적인 설로는 암화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기능이 저하된 세포 중에는 이상 상태를 보이는 것들이 있고 이것이 계속 증식하면 다른 모든 세포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세포가 분열을 반복하면 암화의 위험도가 올라가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 노화의 메커니즘을 획득함으로써 세포의 대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능도 55세정도까지가 한계여서 세포의 대체가 더뎌지는 상태가 오게된다고 한다. 

 

생물은 왜 죽는가?

 

결론은 진화하여 생존하기 위해 죽음이라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생물은 먹을 것과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생존하기 위한 균형의 사슬을 끊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물은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샘플 만들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재료는 오래된 유형을 부수고(죽음)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확보 가능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가 부모보다 다양성이 더 풍부하고 생물계에 있어 더 가치가 있는 존재, 즉 생존 가능성도 더 큰 우수한 존재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부모가 죽고 자손이 남는 편이 종을 유지하는 전략으로서 올바른 선택입니다. 생물은 이렇게 다양성 중시라는 전략을 통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입니다. (224쪽)

 

그러나 인간 부모에게는 자녀를 낳고 죽는 것보다 자신의 자손이 잘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제대로 돌보는게 더 중요하다. 교육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다양성의 확보가 생물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했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자손의 교육 역시 다양성, 개성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환경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결론은 생물학적인 죽음의 관찰에서 현재 인간이라는 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죽음은 생명의 연속성을 지탱하는 원동력

 

앞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죽음은 필요한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을 전하는 이타적인 행위다. 즉 생명이라는 것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을 공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천운을 누리며 편안한 죽음이 보장된 인생이라 해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게 인간이다. 작가는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하며 공포감의 근원은 인간의 지금까지 생존하면서 얻어낸 공감력과 유대감이라고 한다. 나와 공감으로 연결되어 행복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유대가 끊기는 데서 오는 공포라는 것. 인류라는 종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원동력으로 작동(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로 생명을 지탱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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